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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인권 협회 홈페이지 게시글]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해지 촉구 캠페인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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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정선 작성일09-11-02 16:07 조회7,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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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해지 촉구 캠페인 감상문
2009.10.29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해지 촉구 캠페인 감상문


 


김지수 수원외국어 고등학교 2학년


 


  지난 월요일, 우리는 영어작문 시간에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동안 아웅산 수치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었지만 딱히 호기심이 일지 않아 뭔가 대단한 사람일거라는 막연한 느낌만 가졌었지, 적극적으로 찾아본다거나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어떤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몰랐으니 사실 그 시간에 아웅산 수치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 배우게 된 것이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생각보다 훨씬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얀마의 독립투사로, 그녀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국민들의 반독재 시위에 참가하고, 민족민주연합(NLD)을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군사 정부의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총 14여 년의 감금을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1990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을 거두게 되지만, 미얀마 군부는 이에 대해 무효화 처리를 하고 독재체제를 유지한다. 가택연금이 해제되기로 예정되어있던 2009년 5월 말을 몇 주 남겨두지 않았던 5월 중순, 초대받지 않은 한 미국인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자택을 무단침입해 그녀가 다시 재판에서 가택연금을 연장받게 되었고, 이것은 20년 만에 있는 총선에서 NLD가 이기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이유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금당하는 동안, 전화나 인터넷 접촉이 금지된 것은 물론이고, 편지마저 중간에 뺏겨 바깥 세상과 완전히 감금된 생활을 해야했지만, 민주화에 대한 단호한 소신을 지켜온 그녀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나 해오셨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해방시키기 위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므로, 관심이 있는 사람은 부담갖지 말고, 참가 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여태껏 인권에 대한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선생님의 제안에 관심을 가지고 신청하게 되었다.


  그 주 토요일, 1학년과 2학년을 합쳐 총 114명의 학생들이 행진하기 위해 약속장소인 양재역에 모였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은 뒤 아시아 인권센터에서 나오신 지도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출발했다. 그날 우리가 행진경로는 양재역-> 강남역-> 양재역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앞에는 "Free Aung San Suu Kyi(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자유를!)“라고 적히고 뒷면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얼굴이 크게 박힌 단체복을 입고 행진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두 줄로 선 학생들이 길게 늘어서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행진의 맨 앞에 섰던 나와 친구들은 도로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크고 긴 배너를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도로 위에 서 있는 버스 안의 승객들이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한 행인은 나에게 아웅산 수치가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비록 행진을 멈출 수가 없어 제대로 된 대답은 못했지만,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점이 굉장히 뿌듯했다.


  70 여 분간 쉬지 않고 걸은 끝에 강남에 도착해 다시 양재로 돌아왔다. 대낮인데도 강하게 부는 바람 때문에 약간 쌀쌀했고, 긴 거리를 계속 걸은 탓인지 다소 지쳐있었지만, 교훈을 두 개나 얻었다는 보람에 마음은 든든했다.


  한 가지는 바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라는 생각이었다. 국제 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바탕으로 그녀의 자유, 더 나아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함께 힘쓰고, 사람들에게 그녀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알린다면 미얀마의 군사정권도 더 이상 독재 체제를 유지할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의 작은 참여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듯이, 비록 한 번의 행진이 아웅산 수치가 겪고 있는 현실과 미얀마의 민주화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하겠지만,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신념과 소신이 내게 준 깊은 감명이다. ‘교도소와 가택에 여자 혼자의 몸으로 오랜 기간 갇혔으니 그 모든 게 두렵지 않았을까?’, ‘정말 용감하고 굳센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진솔한 대답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공포심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다만 공포 때문에 올바른 길을 소신대로 걷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지요."


  그 말이 더욱 인상깊었던 이유는 그녀도 나처럼 공포를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와 다른 것은 그녀가 두려움을 느낄 줄 모르는 철인이라는 점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지켜나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겠다는, 아직은 막연하지만 잠재력있는 자신감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무언가를 얻고 싶어 참여한 행사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행진에서 내가 더 큰 도움을 받은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란 강한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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